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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문화

조선시대 된장국 재현 – 발효의 시간과 슬로우푸드의 철학

by 히스토샵 2025. 7. 15.

1. 된장의 뿌리, 조선시대 장 문화의 핵심 – 전통 장 담그기

조선시대의 된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닌, 한 가정의 식생활을 지탱하는 핵심 발효식품이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이 직접 장을 담갔으며, 된장과 간장, 청국장은 모두 같은 재료인 메주에서 비롯되었다. 장 담그기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반드시 행하는 일종의 살림의례였다. 콩을 삶아 찧고, 벽돌 모양으로 뭉쳐 짚으로 묶은 후 따뜻한 곳에 매달아 메주를 띄우는 과정은 발효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수주에서 수개월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주는 소금물에 담겨 항아리에 보관되었고, 그 위에는 고추, 숯, 대추를 띄워 잡균의 침입을 막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위로는 간장이 뜨고, 아래로는 된장이 가라앉게 된다. 이 전통 방식의 자연 발효 된장은 고유의 짙은 감칠맛과 함께 짠맛, 구수한 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으며, 저장성과 영양 면에서도 매우 우수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장맛이 가문의 품격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여겼고, 장 담그는 기술은 가정교육의 중요한 일부였다.

조선시대 된장국 재현 – 발효의 시간과 슬로우푸드의 철학


2. 맑고 절제된 국물, 조선의 장국 – 조선시대 된장국 조리법

오늘날 된장찌개는 고기와 두부, 각종 채소가 풍성하게 들어간 진한 찌개의 형태로 발전했지만, 조선시대 된장국은 훨씬 간결하고 담백한 음식이었다. 『규합총서』나 『음식디미방』 같은 고조리서에 따르면, 당시의 된장국은 대개 맑은 국물 형태였으며, 된장을 물에 풀어 채소 몇 가지를 넣고 끓이는 방식이 기본이었다. 고추나 마늘, 육류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멸치, 표고버섯, 말린 새우 등의 재료로 국물의 깊이를 더했다.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채소가 달라지는 점도 조선시대 된장국의 큰 특징이다. 봄에는 냉이와 달래, 여름에는 열무와 애호박, 가을에는 토란대와 가지, 겨울에는 무와 배추 같은 제철 채소가 주요 재료로 쓰였다. 이러한 조리법은 음식 자체가 몸을 보호하고 조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과도 연결된다. 즉, 된장국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과 건강을 함께 고려한 조선의 지혜였다.


3. 전통 재현을 위한 시도 – 된장국 복원 레시피와 체험 기록

현대에서 조선시대 된장국을 재현하려면 몇 가지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된장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저염 제품보다, 재래식 발효 된장 또는 가정에서 직접 담근 고염도의 된장이 더욱 적합하다. 국물은 멸치나 다시마로 기본 육수를 내고, 조선식처럼 마늘을 최소화하고, 고추는 사용하지 않는다. 채소는 한두 가지 제철 재료만 넣어야 하며, 간은 된장만으로 충분히 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와 애호박을 손질해 들기름에 살짝 볶고, 육수를 부어 된장을 체에 걸러 풀어 넣는다. 약불에서 10~15분간 천천히 끓이다가 마지막에 부추나 쪽파를 얹어 완성하면 된다. 현대인의 입맛에는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되려 이 담백한 맛이 된장 고유의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실제 재현해 본 결과, 조선식 된장국은 몸에 부담이 없고, 아침 식사로 매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름기 없는 식단을 지향하거나, 전통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4. 한 그릇 속의 철학 – 슬로우 푸드로서의 조선 된장국

조선시대 된장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시간, 자연의 조화가 응축된 문화적 산물이다. 한 해의 작황에 따라 콩 수확량이 달라졌고, 장 담그는 날의 기후, 메주를 말리는 장소와 방법, 항아리의 보관 위치까지 모든 요소가 장맛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은 결국 음식이 단지 ‘먹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생활과 사유의 일부였음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빠르고 편리한 즉석 음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된장국처럼 오래 발효시키고 천천히 끓여내는 음식에는 시간의 깊이와 정성의 가치가 담겨 있다. 된장국 한 그릇은 그저 조미료로 맛을 낸 국물이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시간을 기다리고, 절제된 방식으로 맛을 내는 슬로우 푸드의 정수다. 조선의 된장국을 오늘날 재현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느림과 정성의 미학을 되찾는 일이다. 이 전통을 지키고 전하는 것은 곧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적 책임이자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