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지만, 그 뿌리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문헌에 다양한 김치 종류가 등장하면서 김치 문화는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에 어떤 김치들이 있었고,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김치를 담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에도 김치가 있었을까?
김치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김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체계화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채소 절임은 있었으나, 양념을 넣어 숙성시키는 방식은 조선시대에 와서야 일반화됩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고추의 도입으로 매운 김치가 보편화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김치의 기본 틀이 완성되었죠.
《산림경제》,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같은 조선시대의 요 리서 들은 다양한 김치 레시피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 문헌을 통해 조선 사람들이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김치를 담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김치 종류
① 동치미
가장 오래된 김치 중 하나로, 무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맑은 물에 저장한 김치입니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며, 주로 겨울철에 먹었습니다.
재료: 무, 배, 파, 마늘, 생강, 소금, 물
특징: 발효된 국물이 시원하여 겨울철 냉국처럼 즐김
② 백김치
양념을 하지 않고, 소금과 배추, 과일, 국물만으로 담근 김치입니다. 맵지 않아 아이들과 어르신이 즐기기 좋은 김치로 조선시대 상류층에서 특히 선호했습니다.
재료: 배추, 배, 밤, 대추, 잣, 소금, 생강, 마늘
특징: 국물은 맑고, 과일로 인해 은은한 단맛이 남
③ 섞박지
무, 배추, 파 등의 채소를 깍두기처럼 썰어 고루 버무려 담근 김치입니다. 오늘날 깍두기의 조상 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추가 도입되기 전에는 맵지 않았고, 소금과 생강, 마늘 정도로만 양념했습니다.
재료: 무, 배추, 파, 마늘, 생강, 고추(후기)
특징: 조리법이 간단하고 숙성 속도가 빠름
④ 김치 장아찌 (지짐김치)
지금의 김장김치보다 염도가 높고 오랫동안 저장해두기 위해 만든 김치입니다. 소금의 양이 많고 발효 기간이 길어 저장식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찌개에 넣거나 볶음용으로 사용했습니다.
3. 김치 담그는 방식은 오늘과 어떻게 달랐을까?
⬥ 고추 없이 만든 김치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후반입니다. 조선 초·중기에는 고추 없이 김치를 담갔기 때문에 오늘날의 빨간 김치가 아닌 맑고 담백한 김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고추 대신 생강, 마늘, 파, 젓갈 등으로 감칠맛을 냈습니다.
⬥ 발효 방법
김치를 담근 후에는 옹기에 저장했습니다. 옹기는 숨을 쉬는 그릇으로, 발효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겨울에는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는 방식으로 온도를 유지했고, 여름에는 서늘한 곳에 두거나 짧은 기간만 보관했습니다.
⬥ 채소의 다양성
오늘날처럼 배추 일변도의 김치가 아니었습니다. 오이김치, 가지김치, 미나리김치, 갓김치, 콩잎김치 등 지역 특색에 따라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김치가 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시절 음식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 고문헌 속 김치 레시피 – 『음식디미방』의 예
『음식디미방』(1670년대, 안동 장씨)은 조선시대 여성 장계향이 쓴 요리서로, 세계 최초의 한글 요리책입니다. 여기엔 무려 146가지의 요리법이 소개되며, 김치도 포함됩니다.
"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 뒤, 물기를 짜고 생강과 파, 마늘을 섞어 국물을 만들어 항아리에 저장한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깍두기나 동치미의 시초로 볼 수 있습니다.
5. 현대에서 재현해 보기
조선시대 김치를 재현해 보기 위해선 고춧가루 없이 만드는 백김치나 동치미가 가장 적합합니다. 요즘 재료로도 충분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고, 발효 숙성 과정은 김치냉장고가 대체해 줍니다.
예를 들어 백김치를 만들고 싶다면, 배추를 절인 뒤 배, 잣, 대추 등을 넣고 찬물에 담가 며칠 숙성시키면 됩니다. 감칠맛이 필요한 경우엔 멸치육수를 살짝 첨가하면 좋습니다.
마무리 – 조선의 김치, 그 속의 지혜
조선시대 김치는 단순한 발효식품이 아니라 자연과 계절을 담은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고춧가루 없이도 맛을 내던 조상들의 방식은 오히려 현대에 맞는 저염, 저자극 식단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치를 단순히 “빨간 반찬”으로만 보지 않고, 그 역사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식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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