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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문화

고려시대 연등회 음식 재현 – 축제와 제의의 맛

by 히스토샵 2025. 7. 14.

1. 연등회란 무엇인가 – 고려시대 최대 불교 행사

연등회(燃燈會)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가 주도의 불교 행사로 격상된 연례적 축제였다. 매년 음력 2월 15일, 부처님의 전생과 공덕을 기리는 이날에는 왕실과 백성 모두가 참여하여 등불을 밝히고 절에서 불경을 외우며 사찰에 음식을 바치고 나누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였기에 연등회는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서 국왕의 통치 기반이자, 백성과 왕실이 교감하는 ‘공공 의례의 장’이기도 했다.

이런 연등회의 핵심은 ‘등’과 ‘음식’이었다. 등불이 정신적 공양이라면, 음식은 물질적 공양으로서 부처님께 바치는 정성이자 공동체가 나누는 축복의 상징이었다. 본 글에서는 고려시대 연등회 때 준비되었던 음식을 고증하고, 실제 조리 재현을 통해 그 문화적 의미를 체험한 과정을 담았다.

2. 고문헌으로 본 연등회 음식의 실체

고려시대의 연등회 음식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불교 관련 문헌, 사찰 기록 등을 통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고려사』에는 연등회 당시 국가에서 준비한 음식 목록이 종종 등장하며, 그 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과일류: 배, 감, 밤, 대추
  • 건과류 및 떡: 유과, 인절미, 약과, 시루떡
  • 전류: 두부 전, 생선 전, 채소전
  • 국물요리: 맑은 장국, 다시마탕
  • 차류와 술: 생강차, 쌍화차, 청주

연등회는 사찰 중심으로 열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은 육식이 배제된 채식 기반이었다. 특히 곡물과 채소를 주재료로 한 음식이 많았고, 유교 제사상과 달리 신선한 재료보다는 ‘절식(節食)’과 ‘공양’의 의미를 담은 절제된 구성으로 준비되었다. 음식은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물이었으며, 이후에는 나누어 먹으며 복을 비는 공동체 의례로 이어졌다.

 

3. 연등회 재현 음식 구성과 조리 과정

현대의 재현 프로젝트에서는 고문헌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상차림을 계획하였다. 장소는 절제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사찰 체험관을 활용했고, 조리는 전통 조리 방식에 따라 대부분 솥과 찜기, 맷돌 등을 활용했다.

1) 시루떡과 약과 (떡류)

  • 재료: 멥쌀가루, 꿀, 계피, 대추, 참기름
  • 조리: 멥쌀가루에 대추와 꿀을 섞어 시루에 찌고, 표면은 계핏가루로 마무리. 약과는 밀가루 반죽에 꿀과 참기름을 섞어 고온에서 튀긴 후 식힌다.
  • 의미: 떡은 ‘기원’과 ‘축복’을, 약과는 불교적 ‘공덕’을 상징.

2) 채소전과 두부전

  • 재료: 애호박, 부추, 두부, 밀가루, 들기름
  • 조리: 애호박과 두부는 얇게 썰어 소금 간 후 밀가루 옷을 입혀 들기름에 지져낸다.
  • 특징: 절에서 흔히 먹던 간소한 전으로 연등회 때도 자주 사용됨.

3) 유과와 밤단자 (건과류)

  • 재료: 찹쌀, 조청, 튀밥, 밤
  • 조리: 찹쌀 반죽을 말아 튀밥에 묻힌 유과, 삶은 밤을 으깨어 만든 단자는 각각 쫄깃하고 달콤한 맛을 낸다.

4) 청주와 생강차

  • 재료: 멥쌀, 누룩, 생강, 꿀

특징: 사찰에서는 차를 중심으로 했지만, 왕실 주도 연등회에서는 청주도 등장했음. 생강차는 불교적 차공양의 대표 격.

 

4. 재현 상차림의 문화적 감상

상차림을 완성하고, 사찰 음악과 함께 앉아 바라본 상차림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엄숙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각 음식은 조형미보다는 의미 중심으로 배치되었으며, ‘공양’이라는 행위 자체가 음식의 소비가 아닌 수행과 기도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한 입 한 입 음식을 먹으면서 느낀 점은 ‘절제’였다. 요즘 시대의 자극적인 음식과 달리, 재현된 연등회 음식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주를 이뤘다. 특히 떡류와 전류는 간이 강하지 않아서 곡물 본연의 맛이 느껴졌고, 청주는 아주 옅은 단맛과 향을 지닌 정도였다.

이 상차림은 입을 위한 것이 아닌 마음을 위한 음식이었다. 형식을 중시하면서도 절제된 음식 구성은 현대인의 ‘미니멀리즘’적 미감과도 통한다. 복잡한 조미료나 화려한 장식 없이도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진정한 음식의 가치가 느껴졌다.

 

 

5. 전통 음식 재현의 가치와 교육적 활용

 

연등회 음식 재현은 단순한 요리 체험을 넘어서 고려시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종교관, 공동체 정신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특히 어린이·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문화유산 전시, 체험형 관광 콘텐츠 등으로 확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전통 음식의 저염식, 곡물 중심 구성은 건강식으로도 각광받을 수 있다. 채식과 단식이 주목받는 오늘날, 고려 연등회 음식은 현대인의 식문화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앞으로는 이런 재현 콘텐츠를 VR 체험, 다큐멘터리 영상, 웹툰 등 다양한 매체로도 확장해, ‘보는 전통’에서 ‘먹고 체험하는 전통’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